수신자 제위, 안녕하십니까?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후의 아침입니다. 그동안 별일은 없었는지 평안하신 지 안부를 여쭙니다. 봄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기를 바랍니다. 무너질 것만 같았던 평온한 일상도 어느덧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고, 이제는 지친 몸을 뉘일 수 있을 정도가 된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이 사실을 당신에게 전하고 싶었습니다만, 제 욕심에 발이 저려 어떻게 하면 보다 더 좋은 전보를 보낼 수 있을까 하며 안부 인사가 늦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합니다. 생각해 보면 너무 스스로만을 생각한 것 같습니다. 당신에게 보내는 제 마음의 편지는 좋은 것만으로 가득 채우고 싶었기 때문에 함부로 손에 펜을 쥘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원했던 것은 그러한 한보따리 같은 전보가 아니라, 무성한 풀잎에게 꼭 필요한 가랑비 같은 안부 인사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누군가 제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저는 그에게로 가서 그의 꽃이 되었습니다. 문득 저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많은 일들을 끝내고, 좋은 전보를 전하기 위해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당신과 못다한 이야기를 하느라 집 앞에서 한 동안을 서성거리며 이야기를 이어나갔습니다. 어느덧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보며, 그동안 제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당신이 제 이름을 불러주었던 것처럼 제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고자 다짐합니다.
데브시스터즈 엔지니어링 데이 INFRA/SRE 밋업
2025년 상반기에 데브시스터즈의 인프라 및 SRE 세션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쿠키런과 다양한 게임들을 운영하고 있는 데브시스터즈의 다양한 고민들을 들을 수 있었고, 마지막에는 현직자들이 고민이 담긴 토크 시간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저는 데브옵스 엔지니어라는 분야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직접 프로덕트를 만드는 것으로 클라이언트가 사용할 서비스를 만들 수도 있지만, 데브옵스 엔지니어의 클라이언트는 바로 팀원들입니다. 팀원들을 위해 견고한 시스템을 만들며 팀원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포지션이라는 마음이 큽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의 한 구절이 있습니다. 제가 개발을 처음 시작할 때, 옆에서 도와주었던 그리고 내가 '개발자'로서 이름이 불려질 수 있도록 뒤에서 노력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나 또한 다른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도록 하고자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조직이 커지고, 내부적으로 많은 프로덕트가 돌아가며 데브시스터즈의 인프라셀에서는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도 배로 증가했습니다. 상용 오픈소스 솔루션으로는 더 이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고, 스스로 운영 플랫폼을 만드는 플랫폼 엔지니어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전사적으로 개발자들의 피로도를 줄이고, 더 빠르게 개발할 수 있을 지 수많은 논의를 이야기했습니다. 마지막에는 모든 청중들에게 마이크를 쥐어주며 모든 사람들이 조직 내에서 '이름을 불러주기' 위한 고민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UBAI에서의 마지막 근무
2024년 7월부터 2025년 1월까지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과학빅데이터AI연구원 데이터 센터에서 일을 했습니다. 운이 너무나도 좋게 교내에서 리눅스를 잘 다루는 사람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에 전임자분과 함께 서버실을 보게 되었고, 저는 한 순간에 마음을 사로잡혔습니다. 그렇게 좋은 기회와 함께 좋은 사람들과 일했던 경험이 너무나 좋았던 것 같습니다.
졸업식을 마치고 나서 다시 같이 일했던 직원분들을 찾아뵈었습니다. 모두 친절하게 맞이해 주셨고, 제가 인사를 마치고 갈 때에는 손에 한가득 제가 자주 꺼내먹던 과자를 쥐어주셨습니다. 무더운 여름에서부터 추운 겨울까지 꽤 많은 신세를 졌던 것 같습니다. 힘든 일이나 재미있는 일들 모두 가득했던, 학교에 들리게 되면 꼭 찾아뵙고자 하는 곳이었습니다.
클라우드와 온프레미즈, 사실 말장난을 하자면 클라우드는 어딘가에 있는 온프레미즈를 쓰는 셈입니다. 결국 둘다 온프레미즈로 귀결되는 셈입니다. 살면서 데이터 센터에서 직접 일하는 개발자는 얼마나 될까요? 그동안 정말 많은 Low 레벨의 작업들을 하면서, 네트워크에 대해서 엄청 깊게 알아갈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서버실에는 항온항습기가 굉장히 시끄럽게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에어팟을 끼지 않으면 청력에 손상을 크게 입습니다. 에어팟을 끼면서 꽤 많은 시간을 서버실에서 보냈던 것 같습니다. 이동식 랙에는 마우스가 있지만, 대부분이 검은색 터미널밖에 없기 때문에 마우스를 쓸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랜선 작업부터 SSD 교체 그리고 리눅스 설치 및 부팅, nfs를 직접 구축하는 등의 작업을 귀찮다거나 쓸모없다고 느꼈습니다만, 돌이켜보면 세상 값진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데이터 센터에서 일했던 이후로 가끔씩 중요한 타이밍에 네트워크 부분에서 강점을 보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묵묵하게나마 도와주셨던 박사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용희 원장님, 항상 함께 해주셨던 팀원들도 모두 감사드립니다.
길고 길었던 여정을 마치며
2025년 2월 24일은 정말 잊지 못할 날입니다. 영원히 오지 않을 줄 알았던 졸업을 하는 날입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도 대학교에 처음 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꽤나 외진 곳에 있었던 고등학생 시절에 살던 곳을 떠나, 서울로 와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제 중학교 졸업식은 꽤 초라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당신을 따라 친구들을 두고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게 되었고, 중학교 때의 기억은 금방 잊히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에는 코로나로 인해 졸업식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사랑하는 친구들과 끝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할 때에는 꼭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졸업을 하겠다는 마음가짐을 했습니다.
제 중학교 때에는 세상이 꽤 좁았습니다. 학교와 피시방, 분식집 그리고 기껏해야 문방구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 때에는 독서실도 가고 이따금씩 친구들과 더 많은 장소를 놀러 다녔습니다. 그리고 대학생이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더 많은 곳들을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만났던 모든 사람들이 제 영감의 원천이었고, 기적이었습니다.
저는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 전공으로, 사실 전공 수업은 제대로 듣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진정으로 가슴 뛰는 일을 찾기 위해서 시험 공부 대신에 해커톤을 선택했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선택했습니다. 무거운 전공책 대신에 맥북 하나를 들고 어디든 돌아다녔습니다. 많은 콘퍼런스에 참여하고, 많은 개발자를 만나고, 소프트웨어를 깊게 파고들었습니다.
끝은 무언가의 시작입니다. 이제 대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더 나아가 사회로 가면 더 넓은 세상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걱정도 있고, 설렘도 있습니다만 결국 내가 대학 생활에서 그래왔듯이 내 가슴을 뛰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나아가야한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본가에 내려가서 잠깐 지내게 되었습니다. 문득 내려가는 버스에서 예전에 본 적이 있었던 허준이 수학자의 졸업식 축사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서울대학교 허준이 졸업축사 "제 대학생활은 길 잃음의 연속.."
우리가 팔십 년을 건강하게 산다고 가정하면 약 삼만일을 사는 셈이라고 합니다. 그중에 며칠을 기억하고 있는지 세어본 적이 있을까요? 우리가 잡고 있는 날들을 삼만의 아주 일부입니다. 먼 옛날의 나와 지금의 나, 먼 훗날의 나라는 세 명의 완벽한 낯선 사람들을 이런 날들이 엉성하게 이어주고 있다고 합니다.
나는 커서 어떻게 살까? 라는 오래된 질문에 오늘부터의 매일이 대답해 준다고 합니다. 먼 옛날의 나와 지금의 내가, 삼만일 중에 아주 극히 소중한 날들을 매개체로 이어져 지금의 내가 되었듯, 앞으로 미래의 나는 지금부터의 소중한 날들이 채워지며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을 쓰며 예전 생각을 떠올려보라고 한다면, 아트랜드라는 문구점 건너편의 분식집에서 눈이 오는 날 친한 동네 형과 떡볶이를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의 저는 제가 이렇게 살아갈 것이라고는 눈곱만큼이나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앞으로 미래의 내가 어떤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는 눈곱만큼도 예측할 수 없을 것입니다.
허준이 수학자님의 말씀대로, 결국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건 미래의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는 것입니다. 오늘부터의 하루하루가, 미래의 나를 엉성하게 이어주고 있을 것입니다.
바다와 사색
항상 사색에 빠지는 시간이 꽤나 긴 것 같습니다. 혼잣말을 계속 되내여보고, 내가 잘못한 것은 없는지 반성도 하며, 내 마음이 어떤지에 대한 정답을 내기 위해 시간을 많이 쏟는 편입니다.
깊은 사색에 빠질 때 쯔음이면, 항상 바다를 찾곤 합니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보며 괭이갈매기 소리와 파도 소리, 그리고 젖은 모래의 철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개발자로서의 고민은 "내가 어떤 것들을 하고 싶은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데이터마이닝 연구실에서 딥러닝에 관한 논문을 썼었지만, 데이터 수집이 대부분이었던 그러한 작업에는 영 소질이 없어 보였던 것 같습니다. 또한, 클라이언트에게 데이터를 전달해 주는 백엔드 개발도 재미있습니다만, 뭔가 본질적으로 팀원들을 돕는 일이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동료 개발자를 위해 무언가를 자동화하고, 동료 마케터를 위해 서비스 파이프라인을 점검하며, 팀 전체를 위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데브옵스 엔지니어라는 포지션으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내용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입 데브옵스"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의견으로 꿈을 포기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습니다만, 그래도 자신이 가슴 뛰는 일을 하는 것이 정도(正道)라고 생각합니다.
가짜를 멀리하다
최근에 문화누리카드라는 14만원 상당의 책을 구매할 수 있는 카드가 발급되었습니다. 책 이외에도 영화나 KTX 등에도 사용할 수 있기에 어디에 쓸까 하다가, 최근에는 책에 꽂혀서 알라딘 중고서점을 돌아다니며 기술서적을 많이 사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쉴 때 유튜브를 많이 보는 편입니다. 휴대폰으로 유튜브를 볼 때, 항상 랜딩 페이지에서 숏츠들을 볼 수 있게 되더라고요. 숏츠가 사람에게 해롭다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브레인롯(Brainrot)이라고 해서 뇌가 썩는다라는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요, 개인적으로 제일 싫었던 점은 AI로 생성된 것처럼 보이는 지어낸 이야기, 그리고 그 지어낸 이야기에 화를 내는 댓글들을 보며 가짜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한 권을 쓸 때 필요한 노력과 시간, 그리고 정성은 상상을 초월한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영상 매체의 퀄리티가 좋아지면서, 영상으로 정보를 얻는 것이 쉬워지고, LLM이 발달하면서 대부분의 정말 필요한 정보만 AI가 추려줍니다. 공식 문서를 읽을 일도 줄었고, 글을 통해서 정보를 얻는 상황이 줄면서 글을 읽는 능력이 많이 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틈틈이 책을 읽어서 보완하려고 합니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진정한 사회인이 되어 일을 하게 된다면 꼭 하고 싶었던 일입니다. 제가 받았던 만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유복하지 않았던 학창시절 제게 도움의 손을 내밀어줬던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삼성 꿈장학재단, 조암 로타랙트 클럽, 종근당 고촌학사,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 장학재단 등...
정말 간절했었던 시절에 엄청난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렇게 여기서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어느 한 재단의 도움도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수도 있습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저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자 합니다.
개인적으로 개발자로서 항상 하고 싶었던 것은 오픈소스 단체에 후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큰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오픈 소스를 스폰서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좀 더 제가 생각하는 개발자스러움에 한 걸음 더 다가갔다고 하는 것일까요? 이 외에도 헌혈을 꾸준히 하고자 합니다. 누군가 꼭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AWS SUMMIT 2025에 참가하다
운이 좋게 2025년 AWS Summit Seoul에 신청이 승낙되어, 양일 중 수요일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부스를 돌아다니며 스탬프를 모으면 AWS 굿즈를 주기도 하고, 평소에 관심이 있던 부스들이 여럿 있어서 관심 있게 둘러보곤 했습니다.
최근에 MSP 관련해서 미팅을 준비하고, 매니저분들과 연락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MSP 부스에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어떤 설루션들이 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놀랐던 것은 데이터독 부스에 갔을 때, 상주하시는 분이 저를 알아보셨는데, 알고 보니 링크드인을 통해서 1촌이었던 데이터독 매니저분이었습니다.
최근에는 APM 솔루션을 찾아보고 있었는데, 직접 만나 뵙게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데이터독이라고 하면 꽤나 비싼 비용으로 유명합니다만... 그래도 그 비싼 데이터독을 저렴하게 사용하는 방법이나 제공하고 있는 설루션들을 통해서 보안이나 컴플라이언스 쪽의 SaaS의 흐름, 그리고 MSP와 써드파티 플랫폼을 제공해 주는 방식 등 생각보다 AWS와 엮여있는 많은 생태계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외에 AWS 공식 부스들이나 기타 회사 차원에서 지원한 부스들이 있는데, 대부분 AWS Bedrock 기반으로 만든 서비스를 보여주셨습니다. 아무래도 워낙 LLM이 뜨겁다보니, LLM 서비스를 제공하는 Bedrock으로 만든 패션을 추천해 주는 시스템이나 자동으로 컴플라이언스를 확인해 주는 챗봇 등 훌륭한 서비스들의 아키텍처를 직접 확인해 볼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본인의 사진을 찍으면 선택한 패션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LLM 기반의 패션 추천 서비스가 있었는데, 기억에 많이 남았던 것 같습니다 ㅎㅎ 스트릿 패션으로 한 번 추천을 부탁했는데, 다른 패션도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한다
5월 30일을 마지막으로, 문토팀에서의 활동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입사 후에 서버 개발 위주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인프라 부분에서의 개선할만한 점이 많았기 때문에, 막바지에 가서는 거의 인프라 관련한 작업들 위주로 마무리한 것 같습니다. 퇴사를 하는 그 주까지 MSP 계약 관련된 내용을 검토하게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습니다만, 다양한 스펙트럼의 일을 해보았고 휼륭한 고문님께서 지켜봐 주셨기 때문에 다양한 것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BI 툴을 도입해서 통계를 개발자뿐만 아니라, 마케팅팀도 만들 수 있도록 플랫폼을 도입했고, 누구나 배포할 수 있도록 CI/CD 파이프라인을 재구축하는 일까지 맡았습니다.
이 외에도 누구나 로그를 볼 수 있도록 로그 시스템을 만드는 다양한 아젠다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제가 보다 잘 맡을 수 있는 다른 문제를 풀기 위해서 AWS 비용 절감을 마지막으로 문토팀을 떠나게 되었습니다만, 짧은 순간에 정말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게 해 준 팀이었습니다.
이국종 님께서는 힘들 때마다 어머니가 해주신 말을 떠올린다고 합니다. '별 볼 일 없는 수많은 의사들 중에서도 네가 참 하수인데, 그런 별 볼이 없는 네가, 네 주제에 다른 사람의 인생에 그 정도 임팩트를 낸다는 자체에 감사하라' 이국종 의사님에 대한 내용을 유튜브에서 우연히 보게 되면서 정말 대단한 책임감과 사명감이라고 느꼈습니다. 의사로서 다른 사람의 인생에 임팩트를 내듯이, 저 또한 엔지니어로서 다른 사람의 임팩트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한다"
엔지니어로서 스스로 사명감을 갖고 있는 문장은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한다"입니다. 누구나 배포할 수 있어야 하고, 누구나 통계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남은 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서 문토에서 누구나 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메타베이스를 도입하여 이제 무관부서는 스스로 GUI를 통해서 어느 정도의 통계를 시각화할 수 있게 되었고, 배포 파이프라인도 개선하여 배포는 더 이상 위험하고 신중해야 하는 작업이 아닌, 서비스를 완성하고 나서 진행하는 마무리 작업이 되었습니다.
떠날 때가 되었을 때에는 꽤 많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소프트웨어라는 기술을 열심히 갈고 닦아서 가장 하고자 했던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나 배포할 수 있는, 누구나 통계를 작성할 수 있는, 누구나 인프라를 볼 수 있는 그러한 시스템 말입니다. 누가 제게 개발자라고 불러준다면, 그의 부름에 개발자로서 대응할 수 있듯이, 저 또한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사색(思索)
사색은 한자로 풀이하면 '생각을 찾는다'라는 이야기입니다. 사색에 잠기면 항상 밤공기와 함께 산책을 하거나 철퍽거리는 바닷소리를 듣고 싶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앞서 허준이 수학자께서는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연속적으로 이어져 있고,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도 연속적으로 이어져있으며, 그 사이를 무수하게 많은 날들이 엉성하게 이어준다고 합니다. 따라서, 사색한다는 것은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로 이어지기 위한 방향을 찾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장동선 뇌과학자께서는 주변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며, 변화의 연속성 안에서 '나'라는 존재가 계속해서 만들어진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내용은 유년 시절에는 스스로 환경을 컨트롤하기 어려워서 자라온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지만, 어른이 되어 스스로 사회에 발을 내딛게 되면 주변 환경을 어느 정도 설정하여, 나 자신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안도현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동안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혹은 모두가 어렵다고 말했던 그 길을 내가 걸을 수 있는지 확신하지 못해 방황도 많이 했습니다. 결국 이 글을 쓰는 지금에는, 누구나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제 진심을 누군가 봐주었기 때문에 더욱 잘 맞을 것 같다고 남들이 확신하는 포지션에 추천되는 영광도 얻었습니다.
사색을 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걱정을 많이 해야 더욱 단단해질 수 있고, 스스로에 대해서 알아가야 할 시간이 너무나도 많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이러한 사색을 더 이상 스스로를 썩이는 행위라고 생각하지 않고, 조금씩 내가 되고자 하는. 누구나 할 수 있도록 기술을 활용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미래와 현재의 나를 이어 주기 위한 과정으로 생각하며 더 이상 사색에 빠지던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치며
충청도에서 나고자란 당신은 사부작사부작이라는 의태어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부터 항상 '사부작사부작' 짐을 정리하거나 산책을 한다거나 아니면 도토리 같은 것들을 주우러 다닌다고 하였습니다. 또 당신은 언젠가 한 번 할아버지께서는 늘 사부작사부작 산보(散步)하셨다고 합니다.
그런 할아버지를 이은 당신을 이어 저 또한 '사부작사부작'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연달아 사부자기 행동하는 모양이라는 뜻으로 별로 힘들이지 않고 계속 가볍게 행동하는 모양을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논밭을 따라 사부작사부작 걸어다니시던 당신의 가벼운 발걸음을 본받아, 저 또한 사부작사부작. 사색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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